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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단상(89)

By March 5, 2021No Comments

하나님과 속삭인다는 의미

김대규 장로

속삭임은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니다. 비밀스럽거나 내보이기에 힘든 때에 쓰는 방법이다. 그중에서도 사랑을 나누는 연인끼리의 속삭임은 가슴을 설레게 하고 달콤스럽기만 하다. 한번 묻고 싶다. 얼마나 많게 하나님과 속삭이고 있는가를. 그리고 얼마나 많이 사랑을 나누며 감격했는가를 말이다. 세상에서 연인끼리는 매일 만나도 목이 마르다. 같이 있어도 설레이고 충분치 않다. 자신도 모르게 쉬지 않고 마음의 이야기를 속삭이려고 든다. 인생을 같이 할지도 불확실한데 영원한 듯이 가슴이 뛴다. 하물며 영원히 함께 할 하나님과의 속삭임은 이에 비교도 되지 않게 설레이며 감격스럽고 끊임이 없어야 할텐데 과연 그럴까.

하나님과의 속삭임은 흔히 하나님과의 교제에 의한 기도와 말씀 묵상을 말한다. 이리 말하면 의례적이거나 틀에 막힌 인상이 들어 깊은 속삭임이 될지 의아심도 생긴다. 그러나 여기에도 자연스러운 진솔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는 고백과 함께 행동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형식적이거나 가식적이기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속삭임은 기도와 묵상의 틀을 뛰어넘어 보다 깊이 있게 믿음 안에서 어디서나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길을 걸으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그때 그때 필요한 속내를 좋던 나쁘던 간에 진솔한 속삭임으로 가질 수 있다. 다만 속삭임을 가지려면 주님하고 부를 때 주님이 왜? 하실 정도로 함께 하심을 느껴야 이상적이다. 이것은 기도가 쌓여지는 과정을 거쳐야 되지 않을까 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기 위한 제사가 있었다. 화목제(Shelamim:레3,7장)로 감사제 서원제 낙헌제가 그 것이었다. 예식적인 행동이어서 속삭임이 있었을까는 잘 모르겠지만 그 때에는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교제와 속삭임을 행동으로 보인 것이라고 하겠다. 신약에 와서 속삭임이란 우리가 주안에, 우리안에 주가 있되, 주의 말씀이 함께 있을 때(요14,15장) 하나가 되게 되므로 진정한 속삭임이 가능케 된다. 따라서 진정한 속삭임이 이루어진다면 “죽으면 죽으리라”는 삶으로 변화하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진정한 속삭임은 사랑을 낳고 순종을 낳는다. 하나님과 합한 자가 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6장 17절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 하였다. 일체감을 나타낸 말씀이다. 있는 그대로를 가식없이 보이는 관계이다. 히스기야왕은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다고 열왕기하18장 6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바로 하나님과의 속삭임을 한 선왕이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에서 하나가 되기 위하여 그가 먼저 한 일이 있었다. 산당을 제거하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리고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키며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들은 모조리 없애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만을 따랐다.

순종 그 자체였다. 그는 하나님과의 속삭임의 진가를 알고 행했던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그의 소리를 경청하셨다고 보여 진다. 하나님은 항상 그와 함게 하셨고 어디를 가든 형통케 하신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왕하18:7). 바로 하나님과 합한 모습이다. 참 속삭임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한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울도 주와 합한 자로 누구보다도 주와 속삭인 사람이었다. 그에게 고난도 많았지만 주와 합한 자가 되기 위해서 세상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날마다 자신은 죽는다고(고전15:31)하였다. 한걸음 더 나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으로 나는 그를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갈2;20)이라고 고백을 하였다. 하나님과 합한 자가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속삭임속에서 그의 생애를 맡겼고, 그것은 평탄하든 험난하든 늘 주만을 의지한 결과의 고백이었다.

하나님과의 진실된 속삭임은 누구나에게나 필요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데도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여기서 충족되어야 할 조건을 발견케 된다. 먼저 주앞에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주님만을 향한 절개와 믿음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상들과 세상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들을 버리고 구별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우리도 구별되어 거룩해야 한다는 점이다(레19:2). 그리고 기도가 쌓일 때 하나님과의 속삭임이 원활케 될 것이다. 기도를 뛰어넘어서 형식 없이 하고픈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연인처럼 소통하며 주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이 된다면 우리는 속삭임을 통해 주의 신부가 되어 하나가 되게 될 것이다.

마지막 때가 가까운 시기에 있는 우리에게는 하나님과의 진실된 속삭임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의 필요를 위한 청구서가 아니라 삶과 자신에 대한 고백이다. 세상을 이길 삶에 대한 이야기, 주님이 가르쳐 주신 사랑 이야기, 꼭 소유해야만 하는 새하늘과 새땅의 비밀등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께서 “내 백성아 구별된 자가 되어 죄에 참예치 말고 재앙을 받지 말라고 하셨다(계18:4)”. “마지막 때를 대비하여 믿음을 지키고 근신하여 기도하며 사랑안에 거하고 청지기로써 최선을 다하라(벧전4:7-11)”고 하셨다.

그러기에 준비된 삶을 살아야하는 우리에게는 더욱 하나님과의 진정한 속삭임이 소중하다. 형식이나 요식적이 아닌 자신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속삭임으로 마음껏 나누어 하나님과의 사랑을 느끼며 우리에게 주시고자하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해야만 하겠다. 하나님과의 속삭임은 종교적 의식속에서나 공식과 같은 틀에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에게 내 깊은 속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속삭임은 나를 드러내어 나를 몽땅 보이는 것이다.

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과의 관계를 비유로 주님의 사랑을 이야기한 것인데 사랑으로 하나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속삭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님과의 속삭임에 익숙해져야 한다. 진실된 속삭임은 사랑의 고백이다. 나의 사랑을 한 올도 걸치지 않은 모습처럼 하나님께 보여 드리는 진솔하고 정직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리될 때 주님은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속삭임이 소중한 것이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과의 속삭임속에 젖어 있어야 실존하는 하나님나라 안에서 주가 주시는 시랑과 의와 평강과 희락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속삭임은 하나님과의 하나됨 이요, 깊은 믿음의 고백이며, 사랑의 표현이자 우리의 삶의 표출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