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믿음, 선교는 삶이다.

김대규 장로

 신앙을 여러 각도에서 표현할 수가 있다. 믿음이 무엇이냐고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선교에 관해서도 같다. 그러나 이것들이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단 한가지, 바로 삶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신앙이라고 할 때 그 실체는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고 전적으로 주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라면 삶으로 반드시 나타나야 하며 복음을 사랑으로 전하는 선교의 실제는 현장에의 삶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현실의 삶이 이리 따르지 못한다면 진정성이 결여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 될 수 없게 된다. 진정 참 신앙 안에 있다고 자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거나 내면과 다른 언행은 신뢰성을 상실하고 믿음을 줄 수 없게 된다. 진실되게 보이려고 행동하는데 그 속에서 가식을 느꼈을 때, 사랑을 한다고 하는데 그 이면에 있는 계산을 알게 될 때 기만을 느끼게 된다. 섬김이 있는데 그 속에 타산이 있다면 자신의 이익만 구하는 꼴이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고 복음의 길을 막는 장애가 된다.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경이 생활화되어야 하는 신앙인의 자세에서 벗어난 것이다.

믿기만 잘하고 삶이 다르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중시하고 잘 하는데 대인관계가 그렇지 못한 경우 요 13:34,35를 그르치므로 참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 이런 점이 자신에게 있다고 할 때에는 고민과 함께 어디서 잘못되었는가를 따져보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회개는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단번에 전환하는, 다시 말해 잘못된 것을 끊어내는 작업인 것이다. 그리하여야 누가 보더라도 진실되고 신뢰가 가고 믿어지는 신앙인이 되어 주의 영광을 나타내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주의 뜻을 일구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친분이 있는 어느 분이 24 시간 오픈하는 소매업을 하신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시간에는 무슬림을 세운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정직하게 일을 하여 전적으로 맡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내게는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바로 그분은 기독교인이다. 많은 사람 중 믿을 만한 사람이 왜 무슬림인가. 믿는 형제는 어디에 갔나. 가슴이 아팠다. 바로 삶이 문제인 것이다. 삶이 믿음을 따르지 못하는 이유일 게다. 삶 따로 믿음 따로이라면 이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신앙이 곧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크리스찬은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러 주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는 사명이 있다 (마 6:10). 이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이슬람이 심각할 정도로 서구진영을 파고드는 오늘의 현실을 보아서도 크리스찬의 삶은 반드시 세상 것과 달리 성경적으로 똑바로 서 있어야 한다.

현대 이슬람교는 그들의 신앙을 총체적인 삶으로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기도와 예배의 종교적 둘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노동시,장 미디아, 교육, 문화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막대한 자금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슬림은 마치 알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은 것처럼 복종하며 종교에 집중하여 삶으로써 신앙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구호처럼 거룩한 이동, 거룩한 삶의 실현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포교를 위한 세계적인 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민이나 노동시장으로의 이동이다. 그들의 삶의 방식 자체가 선교적인 차원이다. 가는 곳마다 종교적 색깔을 나타내지 않고 세상적인 올바른 삶으로써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전술인 것이다. 그들은 알라가 신이며 알라와의 관계는 종의 관계로(꾸란 19:93) 절대 복종이다. 구원보다는 심판에 초점을 두어서 교리를 지키며 선행을 하여야 스스로 구원을 하고 저지른 죄값은 모두 치러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삶은 경직되고 율법적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삶은 평화를 실천한다면서 이를 가장한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면을 가지고 포교를 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이슬람의 빠른 포교의 속도와 그들의 율법적인 정직한 삶이다. 특히 유럽에서의 그들의 잠식율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 섰다.

크리스찬인 우리는 다시한번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지 스스로를 엄격히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이웃의 앞에서 당당한 크리스찬의 모습으로 있는지를 말이다. 우리는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서게 된다. 주님이 인정하시는 자로 설 수 있는지를 한번 쯤은 깊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열처녀의 비유(마 25:1-13)를 명심해야 한다. 처음에는 열처녀 모두가 기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섯만이 끝까지 기름을 준비하며 깨어 있었다. 이는 바로 우리들의 참 신앙의 삶, 준비된 삶을 말하는 것이다. 주님은 모두가 선택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고 본다. 그러므로 믿는 자의 삶은 예수를 닮아가는 삶, 성경적인 삶이어야 한다. 세상의 빛(마 5:14)으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도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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