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Column

– 62번째

By November 30, 2018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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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

김대규 장로

우리는 자유의지에 대해 얼마나 신중히 생각하며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 것일까? 문득 의문이 간다. 우리에게 있는 자유의지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사리를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도록 주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로써 하나님과의 불가분의 관계속에서 부여받은 상대적인 성격의 것이다. 창2:15-17의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볼 때 분명히 사람에게는 제한적인 자유의지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하기에 하나님의 법안에서 자유로이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올바른 판단과 옳은 선택과 바른 행동을 통하여 죄를 떠나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때문에 주어진 제한적 자유의지를 뛰어 넘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결과 하나님과의 단절이다. 단절은 곧 저주이고 원수됨을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권세와 복을 차 버린 것이었다. 또한 피조계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써 만물을 다스려야 할 질서마저 깨지므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저주아래 놓이게 된 것이었다. 유혹과 타락이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가져 왔다. 이 시작은 욕심이다. 곧 탐심이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다(골3:5). 방종의 결과는 이렇다. 지금도 자신의 욕심 때문에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저지른 잘못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덤이 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게 된다. 이는 죄에 묻쳐 있는 이 세상의 모습으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왜 이리 됐을까.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요인을 살펴보면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자유의지를 사용한 분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눅22:42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바로 십자가를 지셔야 할 인성을 지닌 예수님의 순종 어린 자유의지의 결단이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지만 하나님의 법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하는 판단과 선택과 행동이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정점을 이루신 것이다. 인간 창조의 원래 목적을 이루시고자 용서와 화해와 회복을 시켜 주신 것이다. 이는 무한하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희생이요, 사랑이요, 은총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온 피조계를 통 털어 보아도 유일한 가장 큰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인간은 물론 만물들의 회복이다(엡1:10). 그리고 그 끝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계21:1-4). 이리 볼 때 이 세상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는 Key는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인 것이다. 이를 어떻게 쓰는가가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들과 시간들을 어떻게 값있게 쓸 수 있는지를 숙고해야만 한다. 항상 초점은 하나님께 있어야 한다. 잘못된 자유의지로 인해 조상 아담과 같은 죄를 반복해서는 아니된다. 하지만 우리는 주를 만왕의 왕이라면서도 오히려 수많은 때 자신이 왕이되어 살고 있는 모습을 발견케 된다.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의도에 대적하는 꼴이 된다. 우리가 죄에 대해 죽어야 하는데 죽지 못한 때문이다. 주님에 대해 모든 것을 내려놓지 못한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의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발동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새 하늘과 새땅에 들어가야 하므로 이를 위해서라도 자유의지의 발동의 방향이 이에 맞추어져야 한다. 먼저 이 세상을 이기고 뛰어넘어야 하므로 죄의 뿌리가 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한다(요일2:15,16). 이에는 결단과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자유의지의 올바른 선택과 행함이 전제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적당히 믿고 세상을 즐기다가 말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 파묻힐 것인가 아니면 믿음의 삶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것인가의 취사선택 곧 자유의지의 결단과 행함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궁극적으로 그 분의 뜻을 이루며 그 분의 뜻대로 이 세상을 살게 하기 위함이요 결국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자유의지의 발동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자유의지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소망의 성취가 달려 있으므로 자유의지의 선택이 우리의 앞길을 갈라놓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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