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신앙에서 놓쳐서는 아니될 “도”

김대규 장로

우리는 부활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다. 새하늘과 새땅의 소망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완전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 그 자체가 부활을 이루며 영생을 향하여 가는 것이라 하겠다. 고로 우리는 부활의 신앙안에 있어야 한다. 요즈음 나와 연관된 선교가 마약과 관련된 교도소, 재활원으로 우연치 않게 이어져가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히 보이지만 아직은 무엇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인지를 알기에는 이른 것 같다.이 사역 도중에 하나의 성경의 사건이 떠올랐다.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무리가 사도 바울을 벨릭스 총독에게 고소한 사건의 현장이다. 바울의 변증적 변론을 듣고도 이단시하는 무리들과 별도로 기독교 부활의 도를 들은 벨릭스 부부의 모습이었다(행24장). 나타난 결과는 한결같이 자기중심적인 타산적 반응이었다. 사도 바울의 심정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문제는 그런 모습이 비단 그때만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불신자에게는 물론이고 육에 속한 믿는 자의 모습일 수 있다는데 있다.

선교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도 주님의 눈물을 보면서 시작한 강사들의 최선을 다한 복음의 메시지, 주안에서 살아나야만 한다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결단의 순간에 뒤로 물러나는 이들이 있음을 볼 때 칼빈의 예정론을 보는 듯 했다. 이는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를 대상으로 말씀하신 당시에도 그 말씀을 받아드리는 이들, 방관적으로 듣는 이들, 험을 찾아내고 트집잡으려는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대제사장같은 무리들이 있었음을 볼 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몸을 던져 메시지를 전하는 입장에서는 낙오자가 없기를 바라는 안타까움만 더 할 뿐이었다.  그런 속에서도 주님은 결신자들을 세우셨고 가장 중요한 부분인 헌신자 15명 정도를 추려 내셨다. 역시 선교는 하나님의 일로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확인케 하셨다. 이과같이 우리의 부활과 영생도 하나님의 일이시다. 하나님은 수많은 이들 중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취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에 거하여 성숙케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펼치게 하시고 영원한 소망의 길로 인도하고 계신 우리의 창조주 아버지이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완전하고 완성된 단계로 이끄시는 은혜속에서 우리는 지켜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사도바울이 벨릭스 총독 부부에게 전했던 기독교의 도 “의 절제 심판”에 대한 삶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갖춰졌다고 생각하거나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다음 세가지가 나타나야 한다.

첫째 우리가 구원받아 주의 은혜로 주의 의에 힘입어 의롭게 되었으므로(롬24-26) 우리의 삶은 의로워야 한다.  의로운자답게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올바른 행동이 있어야 한다 는 의미이다. 칭의에 걸맞는 자아, 삶이어야 하겠다. 둘째로 절제이다. 절제하면 흔히들 ‘해서는 아니 될 일, 가서는 아니 될 것에 대해 조심하고 하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설명되어지는 부분이다. 비교적 온건 한 풀이이다. 그런데 원어 “엥크라테이아스”로 기본형이 “엥크라테이아”는 한마디로 Self Control 상태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을 막으므로써(갈5:24) 죄악과 욕심을 잘라내는 절제를 통하여(갈5:23) 자기통제가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인간의 본능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이 생의 자랑을 삶에서 잘라내는 절제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선악과 사건은 타락을 가져온 결과 이었기에 그렇다. 고로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벧전2:11). 또한 영적 본능에 따른 욕구 특히 능력과 은사에 대한 지나친 욕구, 욕심을 제어하는 일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주시는 대로 순응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절제를 통하여 주님의 성품(성령의 열매) 에 참예하고 닮아가는 것이다(벧후1:3,4). 절제에는 이런 숨은 뜻이 있다고 본다. 고로 절제란 하지 않도록 하는 것보다는 돌이켜 행치 않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셋째 심판이다. 믿지 않는 죄인들을 향한 심판, 불의 하고 무절제에 따르는 심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며 성결한 삶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 책망받는 삶으로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가 없다.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 이기에 심판이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아니된다. 오히려 바로 서기에 힘쓰며 누구에게나 있을 심판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나갈 때 구원과 함께 상급이 주어지리라 믿는다. 우리가 심판을 기억하며 마음에 두고 산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경건케 될 것이며 영혼구원에 대한 갈급함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선택된 자가 가야 할 길이다. “의와 절제와 심판”의 도가 삶이 될 때 더욱 성숙한 신앙의 결실을 맺을 뿐만 아니라 전도시 이 도를 제시한다면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있으리라고 본다. 이를 위한 우리의 출발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답게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진정으로 십자가에 못박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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