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News

1분단상(91)

By April 13, 2021April 16th, 2021No Comments

예레미야의 눈물이 우리에게는 어떤 눈물 이어야 하나

 

김대규 장로

예레미야는 626 BC 부터 40년간 다섯왕의 시대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의 전령자로써 사명을 다한 제사장 가문출신의 선지자이었다. 예레미야는 예레미야서와 애가서를 통하여 이스라엘(유다)의 멸망을 바라보며 수없는 애통함과 눈물을 보였다(예:렘9:1,!4:17, 애3:49,50).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신을 숭배하면서 개인의 행복과 평안을 추구하였고 개인적인 영달에 빠져 하나님과는 동떨어진 세상적인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설마 임하겠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정녕 그랬다면 그것은 그들의 오만이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진정한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는 외면했고 오히려 가짜 선지자들의 듣기 좋은 소리에 만족하며 세상살이에 빠져 타락하였다. 그들은 마치 불치병에 걸려 있어 죽을 수도 있는 상태의 병자가 그 병을 인정치 않고 의사나 약을 거부하며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우겨대는 것과도 같았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현실에 타성이 생겨났고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되어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습은 달라도 비슷한 내용을 띠고 있는 오늘날에 비교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젖어 사이비 신앙인지도 모르는 채 자신은 올바르게 서 있다고 하면서 삶은 세속적이고, 주를 위한다고 열심을 내지만 자기실현에 충실하며, 현세의 축복과 행복을 추구하는 많은 현대인의 신앙은 과연 그들과 다를 바가 있을까?
아니다. 공의의 하나님의 진노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고로 깨어나야만 한다. 영적 각성이 요구된다.예레미야 당시 하나님은 하나님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유다를 응징하기 위해 바벨론으로 하여금 침략케 하였는데 597BC 침략시 무조건 항복케 하여 멸망은 면하는 대신 지도자들이 볼모로 잡혀갔고 궁정집기들을 모두 빼앗아갔다.
그러나 하나님께로의 회귀보다는 우상숭배, 도덕적 타락, 사회적 부패가 더 만연해지고(렘5:1-9,23:10-14)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므로 586BC에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함락케 하고 성벽을 헐고 왕과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므로 유다왕국은 끝내 무너졌다(렘25:9,39:1-9). 왜 하나님은 그렇게까지 하셨어야만 되었을까? 하나님의 공의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는 것도 잊고 하나님을 경외치 않았으며 생명도 없는 이방신을 우상숭배하면서 세상을 좋아해 하나님의 길로 가기를 외면한 결과인 것이다.
오늘날의 현실도 정도를 벗어나 혼돈 속에 있다. 이런 속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고 계신 것일가? 하나님앞에 바로 서는 것이다. 현실의 안주와 만족, 현세적인 믿음과 축복을 바라보며 세상에 묶어 있는 것이 아니라 참 믿음과 참 구원을 가지고 세상과 구별되어 지금, 하나님나라(현재성)에 거하여 참된 축복을 누리며,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확장해 나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리 될 때이어야 주님이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들림(휴거)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써 영원한 축복이요, 하나님의 유업인 새 하늘과 새 땅인 하나님나라(미래성)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은 죄와 불의가 가득한 사탄의 세계이다. 잠시 동안으로 불로 없어질 세상이다. 무엇 때문에 미련을 가지려고 하는가? 죄와 우상화된 것이 있다면 철저히 제거해야만 한다. 당시 이스라엘을 징계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완전하게 버리시지는 않으셨다.  70년간의 포로생활을 통하여 회개시키신 후 구원의 역사로 회복시켜 주셨다. 이 회복의 연장선에서 이방인인 우리가 있어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유다에 대한 심판과 이스라엘을 무너트렸던 바벨론의 심판은 결국 열방에 대한, 그리고 우주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져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육에 속한 자들과 세상에 속한 것들”에 대한 최후의 불 심판이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렘25:1-28). 끝은 심판이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우상숭배와 세상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의 회개와 구원을 갈망하는 애끓는 눈물이었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하신 사랑의 마음이었다면 우리에게 이 눈물은 어떠한 눈물이 되어야 하는 가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 심판에 직면할 자들의 구원을 위한 눈물 이어야 하며, 참 믿음 위에 서 있지 못하면서도 참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거나, 아직도 세상 반, 믿음 반에 있는 자들을 깨우는 외침의 눈물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내 스스로 각성하여 주 앞에 바로 서려는 몸부림으로 들림(부활과 휴거)에 대한 확신을 다짐할 수 있는 고뇌의 눈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우리에게는 죽느냐 사느냐를 가르는 메시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