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Column

– 36번째

By October 9, 2016No Comments

 사명자와 사역자

김대규 장로

주의 사명과 사역은 사실상 구분할 수가 없다. 다 주께로부터 나온 주의 일들이기에 그렇다. 하나 지금의 현실에서는 구분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요즈음의 신앙세계는 사역으로 넘쳐난다. 아니 사역에 모두가 헤엄을 치는 모양새로 푹 빠져 있다. 사역을 놓으면 적막해하고 허탈해 한다. 정서적으로까지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충격이다.왜 그럴까? 우리 신앙의 기틀을 점검해 보면 어느 정도는 알 수가 있을 듯 싶다. 신앙의 기틀은 ‘하나님과 나’라는 일대일의 관계이다. 하나님은 창조주 나는 그분의 피조물, 모든 주권은 그분에게 있고 나는 그분에 속한 자, 그분은 아버지이고 나는 자녀, 그분은 구원자 나는 구원받은 자, 그분은 보호자 나는 피보호자의 관계가 분명하게 서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나를 사랑해 죽기까지 하신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이런 관계성안에 있다면 나의 존재를 알게 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고 그분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져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행하고 계시므로 나의 자력으로 할 일도 없고, 해서도 아니된다. 왜냐하면 자력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내 자신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 기틀이 흩어지지 않고 정확하게 마음판에 새겨졌다면 사명과 사역을 굳이 나눌 필요가 없을 뿐더러 사역을 놓는다 해도 문제가 될 일이 없다. 그러나 일대일의 관계가 잘 이루어졌고 문제도 없다 해서 그리고 기본적인 것이라고 등한시하면서 주의 일만에 매달리다 보면 문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여기서 스스로가 알았건 몰랐건 간에 자신의 신앙이 망가지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러기에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뚜렷하게 안다면 하나님의 사역에 앞서 먼저 언제나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가 올바르게 선 상태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성숙에로의 성화, 구원의 완성, 성경적 삶을 말하기도 한다. 그 중 제일 중요한 목록은 주 앞에 내가 죽어 있는가이다. 살아 있다고 한다면 그만큼 인간적으로 펄펄 뛰는 격이 된다. 그런데 요즈음 어디서나 많은 이들에게서 이런 모습이 보인다. 한마디로 순서가 뒤바뀐 탓이다. 그래서는 주의 뜻을 이룰 수 없다. 겉으로는 이루어지는 것같이 보이는데 알맹이가 없다. 속 빈 강정과도 같다. 주의 뜻대로 한다는데 자신의 의도가 숨어 있어 냄새가 난다. 목적을 위해 주님을 앞서 나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주님은 뒷전에 계신다. 주의 이름, 주의 영광을 외치면서도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한 사역인지 방향을 잃는 경우도 도처에 흔하다. 잘못하면 사역은 일로만 그칠 수가 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들의 문제이고 바로 내자신의 문제이라고 본다.

여기서 사명과 사역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보자 그러기 위해 소명(Calling)이 우선이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수행해야 할 사명에로의 부르심이다. 이 부름이 받은 자가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수행해야 하는 과업이 바로 사명(mission)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르심이 없었다면 사명자가 아니다. 사명자에게는 순종만이 있다. 스스로 된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명령으로 산다. 하나님의 도구로써의 역할이다. 사명자는 진로를 변경하거나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광의로 볼 때 Ekklesia(교회)도 불러낸다는 의미이므로 모든 크리스챤이 포함되나 여기서의 의미는 아니다. 부르심이 없었다면 직분에 상관없이 사역자(minister)이다. 주의 뜻을 이루는데 필요한 섬기는 일이 사역(ministry)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일꾼이요 주께서 시킨 일을 충성되이 행하는 종인 것이다. minister가 라틴어 servant(종)에서 유래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결코 하나님을 위한 인간의 봉사가 아니다. 만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고 올바른 사역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내 자신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도구로써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주의 뜻만이 이루어지도록 섬김과 헌신이 있을 뿐이다. 사명자도 수행해야 하는 일이 사역이다. 사역의 열매는 가시적인 전리품들이 아니다. 사명자로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사도 바울선생이고 사역자로서는 스테반 집사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워질까 한다. 이 두 분은 다 순교하였다. 왜냐하면 주님의 사랑을 알았기에—-. 사명과 사역은 이런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사역현장이 job과도 같은 인상을 받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일일까. 사역이 자신들의 일처럼 보여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열심을 다하고 사역을 놓는다고 무너져 내리는 듯한 허탈감들이 있다면 왜일까. 우리는 마 7:21-23을 명심해야 한다. 진정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사명과 사역을 감당했다면 주의 이름과 영광만이 나타날 것이며 언제나 주님 앞에 감사함과 즐거움이 넘쳐나리라고 본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