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Column

– 66번째

By March 12, 2019No Comments

신구약의 중간기에서 배워야 할 신앙(2)


김대규 장로


신구약의 중간기가 아무리 침묵기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 자리에 함께하셨고 하나님의 때가 차도록(Pleroo) 역사하고 계셨다. 죄악과 신앙의 타락과 고난의 역사 속에 있는 당신의 피조물 인간을 바라보시며 말라기를 통해 예고하신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실현을 위해 하나님은 홀로 분주하게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었다고 본다. 그 시대의 사람들도 중간기 이전에 주신 여러 말씀을 자세히 들어 보았다면 그 시대의 흐름을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인용되어지고 있는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이사야, 다니엘서등은 세계사적인 강대국 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제국들의 등장과 멸망 그리고 그에 따른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연결할 때 중간기를 추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로 중간기에 있을 일들을 미리 알게 하였고 외경의 마카베오 상하를 통해 외세 하에서 이스라엘의 신앙 사수와 항쟁과 혁명과 변질 그에 따른 역경의 과정을 밝힘으로써 구약과 신약의 연결고리인 중간기에있었던 이스라엘의 역사와 하나님의 손길을 알도록 가르쳐 주고있는 것이다.

지난번(1)에서 중간기의 흐름과 우리의 신앙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번(2)에서는 중간기 이전과 중간기 기간에서 우리가 꼭 깨닫고 지켜야 한다고 느껴지는 믿음의 여정을 나누고자 한다.

첫째로 다니엘과 세 친구의 풀무 속의 사건이다. 이 사건의 각도를 하나님의 도우심과 신앙의 절개를 지킨 의로운 자의 승리로만 보아서는 아니된다. 이 메시지의 초점은 신앙인은 설령 하나님의 도움이 없다 하더라도 어떠한 역경에서도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고로 우리의 삶이 순교적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적지와 목적은 이 땅도 이 땅의 영화도 아닌 새 하늘 새 땅과 영원한 복락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때문에 매일 구원을 이루며 순례의 길을 가고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신앙이다. 이 여정이 없다면 허사일 것이다.

둘째 신앙 절개의 계승이 중간기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모든 나라를 헬라화시킨 헬라제국의 한축인 셀레우코스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가 BC167 유대인을 탄압하며 악정을 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을 말살하려고 제사장들을 모독게 하고 안식일을 금하며 율법과 할례와 희생 제사를 금하고 끝내는 성전에서 제우스신에게 돼지의 피로 제사케 하며 돼지고기를 먹게 하고 문화 풍습을 헬라의 것으로 강요하였다. 이를 위반할 시는 사형에 처했다. 이때 많은 제사장이 타협게 되었고 백성들도 신앙을 저버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는 마치 앞으로 있을 적그리스도의 모형처럼 느껴진다. 이런 시기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린 아기에게 할례를 했다고 해서 아기를 죽어 그의 어머니 목에 걸게 하고 온 마을을 다니게 한 후 죽인 끔찍한 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머리 가죽을 벗겨 7형제와 어머니가 죽임을 당한 일등 죽음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신앙의 절개를 지킨 많은 사건이 있었다.

우리는 편한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우리에게 이런 처지가 생긴다면 어찌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조금만 불편해도 내 마음대로 하려는 우리이다. 타협과 합리를 내세우는 우리이다. 우리는 너무나 현실에 물들어 있다. 교회 안에도 세상의 것들이 들어와 동화시키고 있다. 그런 일이 없겠지만 만일 우리가 적그리스도와 접하게 된다면 타협 없는 신앙의 절개를 무조건적으로 지킬 수 있겠는가. 신앙은 타협도 합리도 아니다. 정도만이 길인 것이다. 고로 우리는 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자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히11장). 이에 필요한 것은 끝까지 승리할 수 있는 영적인 할례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어야 한다.

셋째 마카비(망치) 혁명이 성공하여 다윗 혈통이 아닌 제사장 맛다디아의 가문이 왕이 되어 하스몬 왕조를 이루어 BC142-67까지 지속하였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의 초심을 잃고 헬라화하면서 종교적 분파도 나타났고 형제간의 정치적 분쟁의 결과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BC63). 시간이 가면서 변질하여 생긴 일이다. 신앙의 변질과 타락의 결과는 이렇게 처참함이다. 왜 구약의 초기부터 채 바퀴가 돌 듯 회개와 징계의 반복이 거듭된 것일까. 신앙기초의 부실과 현실의 안일추구가 문제일 수도 있다. 삶의 중심에 참된 믿음이 없고 불순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늘 영적 각성과 영적 무장 속에 있어야 하겠다. 주 안에 우리가,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주와 연합된 삶을 살아가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하나님이 최우선이 아닌 것은 다 우상숭배이다. 우상숭배는 죄이자 타락이다.

넷째 하나님의 역사는 신정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인간이 통치하는 왕정 시대가 도래했고 지금도 인간이 다스리는 공화국 시대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 이후는 완전한 신정 시대가 될 것이다. 이에 준비된 삶을 살고 있는가. 작은 예수가 되어 가는 길로 가고 있어야 만 할 것이다. 곧 주님을 닮고 따르는 삶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왕이신 하나님 나라 안에서 부활의 신앙으로 주께서 주시는 자유함속에서 순종된 삶 행함이 따르는 삶 천국 복음 전파의 삶 거룩하고 성결된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

다섯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참으시며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시고 계신다. 그것은 심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것이다. 이 중간기도 마찬가지이었다. 지금의 우리 앞에는 영원한 새 하늘 새 땅이 놓여 있다. 이리 볼 때 우리의 필요는 확고한 윤리적인 신앙이다. 곧 주 안에서 말과 삶이 같을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것이다. 중간기를 볼수록 신앙의 거울이 되는 것들이 많다. 그만큼 하나님은 그 시대에 맞게 역사하신 것을 알게 하신다.